레인에게 기억되는 바다는 다른 사람들이 떠올리는 아름다운 곳과는 조금 달랐다. 밀려오는 파도 소리와, 그 아래의 빛이 들지 않는 공간... 먹먹함과 서늘함만이 공존하는 곳. 그것이 레인이 가물가물해진 기억으로 떠올리는 바다의 이미지였다. 

기실, 그가 처음부터 바다를 이렇게 부정적인 이미지로 떠올렸던 것은 아니었다. 레인이 예전에 살던 곳은 바닷가가 보이는 시골 마을이었는데, 그 모습이 무척 아름다워서 마을 사람들의 자랑거리였다. 그 모습을 레인도 좋아했었지만... 더 이상 그 형상을 그려내지 못하니 의미 없는 이야기겠지. 마법사가 된 이후로 호그와트를 제외하곤 밖에 나갈 수 없었으니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튼 레인이 자주 가던 서재는 주변이 조용할 때 바깥의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곤 했는데, 파도가 크게 몰아치는 날이면 희미하게 그 소리 또한 들려왔다. 나갈 수 없는 바깥,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서늘함, 혼자만 남은 외로움 사이에서 의미 없이 활자를 눈에 담아내다 보면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난다. 그때 느꼈던 감정을 이야기하게 된다면 레인은 '상실감'이라 정의할 것이다. 레인은 상실감을 느끼게 하는 바다가... 그래, 싫었던 것 같다.

좋은 기억 같은 건 하나도 없는, 레인의 어릴 적을 일깨우는 바다. 분명 그런 곳이었는데... 이상한 기분이지. 너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이곳이 사랑스러워질 수 있다는 게. 레인은 빛이 사그라지고 어둠이 내리 앉은 바닷가에서 너와 눈을 맞추며 호선을 그렸다. 옅은 바람이 스치고 파도가 우리의 앞까지 치고 들어왔다가 돌아간다. 나의 부정적인 기억이 너와의 추억으로 새로 덧칠해진다. 

"그럼 나도 널 나만의 왕자님이라고 말해줄까? 동화책에서 인어가 열렬하게 사랑하는 건 왕자님이잖아."

있지, 최근에는 그 동화책에 나온 주인공이 조금 이해가 되는 것 같아. 그리 이야기하며 손을 마주 잡았다. 아까 같이 만졌던 모래 때문인지 마주 잡은 손이 약간 까끌한 것도 같았으나,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소매를 잡은 손을 이끌며 레인은 기분 좋은 목소리로 노래하듯 속삭였다. 네가 바란다면 난 무엇이든 이루어주고 싶은걸. 어릴 때는 그 인어를 보면서 정말 바보 같은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네가 영원히 날 바라보고 기억해준다면, 난 너를 위해 물거품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하게 되어버렸으니까." 

어쩌면 나도 비슷해진 거 같지 않아? 부드러운 음악 소리 대신 밀려오는 파도 소리를 반주 삼아 스텝을 천천히 밟아나간다. 허공에 숨소리와 함께 흘리는 즐거운 웃음소리가 섞이고, 우리의 뒤늦은 프롬파티를 수놓는다. 장소도 분위기도 어느 것 하나 닮은 것은 없었으나, 상관없었다. 네가 이 시간을 소중히 하게 되리라는 것은 인지할 수 있었으니까. 네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느낄 때, 이런 순간에 레인은 행복이라는 감정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발이 밟혀도 좋고, 이 춤이 다른 사람에게 엉망으로 보인다고 해도 좋았다. 세상에 우리 둘만 남은 것 같은 이 충족감이 그를 우울 속에서 끌어낼 수 있었으니. 어느새 이전보다 길어진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서로의 색을 담은 리본이 함께 춤을 추는 것이 눈에 담긴다. 문득 우리의 이야기가 동화책으로 쓰이게 된다면 마지막 문장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같은 문구가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토록 꺼렸던 공간이 어느새 사랑스러워지고, 가장 싫어했던 문장으로 제 이야기를 장식한다니. 과거의 자신에게 말한다면 믿지 않을 것이 분명해, 이 시간이 정말 마법 같았다.

"나도 그래. 내 모든 것들은 너를 만나기 위해 존재했던 것 같아. 너를 사랑하는 건 운명처럼 당연한 거였어."

온전한 마법사도, 머글도 되지 못한 레인이 유일하게 완벽하게 해낸 마법을 말하게 된다면 당신의 이름일 것이다. 그만큼 기적 같은 일이었다. 함께할 수 있는 이 순간이 너무 꿈만 같아서... 그래서 레인은 고개를 숙여 입을 맞추었다. 익숙한 일일 것이다. 평소에는 만지면 부서지는 설탕 과자라도 다루는 듯 조심스럽게 굴었지만, 이렇게 참을 수 없이 행복해지는 날이면 소리 없이 입을 맞추곤 했으니. 하고 나면 부끄러워할 것을 알면서도 감정을 이길 수 없는 모양이었다. 속눈썹이 느리게 내려앉고, 담담하게 구는 표정과는 다르게 마주 잡은 손이 옅게 떨렸다. 매번 처음처럼 굴고 서툴렀지만 애정이 담겨 있기에 이마저도 나쁘지 않았다. 잠깐의 정적, 그 끝에 서로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상기된 얼굴로 옅은 숨을 내뱉던 레인은 대답했다. 

"몇 번이고 말해줄게. 내가 널 사랑하고 있다는걸. 내 숨은 너로 이루어진다고."

...그럼 돌아갈까? 감기에 걸리면 큰일이니까. 조금 붉어진 뺨을 다른 손으로 감싼 그가, 속삭이며 손을 고쳐 잡았다. 먼저 옮기는 걸음을 따라 내일은 다른 곳을 가보자, 같은 소소한 대화를 하며 따라간다. 점점 둘의 목소리가 작아지고, 모래사장에는 두 개의 발자국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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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이야기하게 되었다는 것이 신기하지. 
너와 함께한다면 어떤 계절이라도 아름다울 거야. 
그게 우리의 해피엔딩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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